잃어버린 30년, 일본 - 왜 요즘 핫한가? 닛케이, 부동산, 성장률
올해 G7 주가 상승률 1위
요즘 일본 경제가 뜨겁다는 건 자산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닛케이는 19일 기준 작년 말 대비 27.9% 올랐는데, 미국 S&P500 상승률(14.8%)의 2배에 가깝다. 올 들어 닛케이는 G7의 나라별 대표지수 중 최고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영국과 캐나다의 주가 상승률이 1~2%대에 그치는 것과 분명하게 대비된다. 닛케이는 기술주 중심의 미국 나스닥지수에만 뒤질 뿐이다. 이에 따라 올해 버블 붕괴 이후 33년 만에 닛케이가 3만 선에 안착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리멸렬하던 부동산 가격도 반등세에 힘이 붙었다. 부동산 정보회사 후도산게이자이에 따르면 지난 3월 수도권 신축 맨션의 평균 가격이 1억4360만엔으로 1973년 조사 시작 이후 처음으로 1억엔을 넘었다. 후도산게이자이는 “역세권에 2억~4억엔을 넘나드는 고가 맨션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부동산 정보회사 간테이에 따르면, 지난 3월 도쿄 23구의 70㎡짜리 구축 맨션 평균 가격은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7000만엔을 넘어섰다. 1999년 가격(3475만엔)의 2배가 넘는다.
주택 월세 흐름도 경기 회복을 반영하고 있다. 도쿄 23구의 지난달 1㎡당 월세는 4153엔까지 올랐는데, 2004년 이후 최고치를 5개월 연속 경신한 것이다. 다카하시 마사유키 간테이 수석연구원은 “올해는 도쿄 도심으로 인구가 유입되는 현상이 뚜렷하다”고 했다.
단순히 자산 가격만 오른다고 보면 오산이다. 일본의 올해 4월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1조8951억엔으로 작년 4월보다 76.3% 늘었다. 내수가 살아나고 수출도 회복되는 흐름이 뚜렷하다. 기업들의 실적 향상이 돋보인다. 닛케이보다 반영하는 기업 숫자가 더 많은 토픽스지수를 구성하는 기업의 57%가 지난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는데, 이런 기업들의 순이익은 작년 1분기 대비 62% 늘었다.
고용에도 훈풍이 분다. 지난 4월 기준 일본의 실업률은 2.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함께 가장 낮다.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대졸자 취업률은 97.3%에 달했다. 사실상 완전 고용이 이뤄지고 있다. 고용 시장이 호조를 보이자 일본인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지며 소비도 살아나고 있다. 최대 노동단체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봄 협상에서 평균 임금이 30년 사이 최고치인 3.66% 올랐다. 인력이 부족해지자 임금을 올려 인재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도 일본 투자 늘려
해외발 투자금도 물밀듯 들어온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은 일본의 5대 종합상사(이토추·마루베니·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의 지분을 늘리고 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난 19일 자회사를 통해 보유한 5대 종합상사 지분을 평균 8.5% 이상으로 늘렸다고 밝혔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최근 11주 연속으로 일본 주식을 순매수했다. 엔저를 노린 외국인 관광객도 폭발적으로 들어온다. 지난 4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도 200만명 수준으로 작년 4월(14만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경기 전망도 밝다. 최근 블룸버그는 토픽스지수 구성 기업의 주당순이익(EPS)이 1년 후에는 5.2%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블룸버그 전망치를 보면, 12개월 이내에 일본에 경기 침체가 찾아올 확률은 30%로 미국(65%), 유럽(40%)보다 낮다. 일본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도 꾸준히 늘었다. 2008년 168조엔에서 지난해 말에는 321조엔까지 증가했다. 투자 여력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김채윤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구매관리자지수(PMI)가 모두 경기 확대의 분기점인 50포인트를 상회한다”며 “경기 정상화의 궤도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정책 일관성, 외국인의 장기 투자에 유리
한동안 혁신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일본 기업들도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는 추세다. 특히, 부활을 노리는 반도체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 상위 15곳 중 8곳이 일본 기업이다. 미국은 반도체 완성품 제조업체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가 많다면, 일본은 주요 반도체 기업 중 장비·소재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70% 정도다. 요즘은 미·중 갈등이 격화되자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TSMC, 마이크론,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반도체 강자들이 속속 일본 투자를 결정했다.
반도체 외에도 혁신을 선보이며 주목받는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우주 기업 아이스페이스는 세계 최초의 민간 달 착륙선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제약사 에자이는 미국의 바이오젠과 공동으로 치매 치료제를 개발해 세계 바이오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본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같은 콘텐츠 산업도 빠른 속도로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일본 주식시장이 더 상승할 것이라는 이유?
일본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이유로 스즈키 대표는 “적극적인 기술 투자와 정직하고 성실한 일본식 근로 문화가 주가를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들”이라고 했다. 그는 “도요타와 소니 외에도 공장 자동화 기업 키엔스와 반도체 기업 도쿄일렉트론도 실적과 비전이 돋보인다”고 했다. 워런 버핏이 대량으로 추가 매수한 종합상사들에 대해서도 그는 “주목할 만하다”고 했다. 스즈키 대표는 이어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상품 가치도 높아 외화를 벌어들이는 무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스즈키 대표는 “그동안 중국이나 대만의 공급망에 의존해왔던 미국과 유럽이 지정학적 갈등을 겪고 대체 거래처로 일본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도 증시에 호재”라며 “이런 상황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반도체 육성 정책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최근 TSMC를 비롯해 해외 기업의 생산 시설 유치에 성공하면서 유입되는 외국인 근로자가 늘었다. 그는 “최근 늘어난 일본 내 외국인들이 실수요자로서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출처 : 조선일보